제니와 함께 살기 전 나는 요양원에서 8-9개월 정도 간호사로 일했다. 그때 가장 많이 듣던 말이 “어르신들은 넘어지기 시작하면 돌아가신다”라는 말이었다. 그냥 한 두 번 넘어지는 것 말고, 하루에도 몇 번씩, 또는 거의 매일 이런저런 이유로 넘어지는 어르신들 (평소에는 전혀 안 그러시던 분들)은 정말 자주 넘어지기 시작하시면 수 주 안에 돌아가시는 분들이 많았다. 어르신들과 비교해서 젊은 나이였던 50대 초반의 제니도 폐암 4기 뼈전이 말기암 진단을 받은 지 5개월 정도 된 4월 초 즈음부터 넘어지기 시작했는데, 이 포스팅에서는 그 당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처음으로 구급차를 부른 날
이 전 포스팅에서도 언급한 적이 있는 일인데, 처음으로 제니를 위해 구급차를 부른 날은, 제니가 약에 취해서 소파에서 자다 굴러 떨어졌을 때이다. 제니가 소파에서 잘 때부터 뭔가 아슬아슬해서 난 소파 밑에 쿠션과 담요를 쌓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소파가 낮은 편이었고, 쿠션과 담요는 상당히 두툼하게 깔렸기에 제니는 굴러 떨어져서도 다치거나 하지 않았고, 잠에서도 깨지 않았다. 너무 깊게 잠든 제니가 걱정돼서 완화의료 가정방문 간호사를 불렀는데 제니는 간호사가 계속해서 흔들어 깨우자 조금씩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쿠션 위에 누워있던 제니는 바닥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그런 제니를 위해 간호사는 구급차를 불렀다.
넘어진 사람을 위해 구급차를 부르는 것을 상상도 못 했던 나는 구급대원들이 뭘 할 수 있을까, 어떻게 도와줄 수 있을까 궁금했다. 그들은 제니의 상태를 파악한 후 바로 구급차로 달려가 방석과 펌프 같은 것을 가져왔다. 제니 엉덩이 밑에 방석을 깔고, 펌프를 방석에 연결한 후 전원을 켜고 버튼을 누르니 방석이 높이 40-50센티 정도의 의자로 부풀어 올랐고, 제니는 보행 보조기구와 응급대원의 도움으로 부풀어 오른 의자에서 일어설 수 있었다.
이 당시를 가장 처음 넘어진 날이라고 보기에는 약에 너무 취해 소파에서 구른 정도?라고 생각해서 중요하게 기록해 놓지는 않았었다.
2022년 4월 8일 뒤로 넘어진 날

위의 투약일지를 보면 4월 8일 제니는 두 번 뒤로 넘어졌고, 그로 인한 상처는 없다고 쓰여있다. 일어나면서 혈압이 떨어졌던 것인지 궁금해했던 기록으로 봐서 제니가 어떤 이유로 넘어졌는지 알지 못했던 것 같다. 지금 기억나는 것은 제니가 처음 이렇게 넘어졌을 때에는 어떻게든 일어나 보려고 노력을 했었고, 어떻게든 일어났었다는 것이다. 의자 등을 집고 일어나는 것을 시도했었는데, 왼쪽 허벅지에 크게 뼈전이가 되어있고 오른쪽도 조금, 허리에도 조금 전이가 되었던 제니는 다리를 앞으로 옮겨오는 것 자체를 굉장히 어려워했다.
내가 아무리 힘을 써서 일으켜보려 해도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나보다 몸무게가 최소 15킬로그램은 더 나가기도 했고, 제니는 며칠 전부터 음식 섭취를 중단한 상태였기에 힘도 상당히 부치는 것 같았다. 게다가 뼈전이가 4개월 사이에 어디로 더 퍼졌을지 알지 못하는 상황이었기에 내가 무리해서 여기저기를 잡고 당기는 것은 상당히 위험한 일이기도 했다.
밖에서 넘어진 날

4월 10일 투약일지를 보면 제니가 두 번 밖에서 넘어졌다고 쓰여있다. 이 날은 아마도 내가 제니가 넘어지는 것은 보지 못하고, 제니가 넘어졌다고 말을 하면서 까진 무릎과 이마를 보여줬었던 날인 것 같다. 내가 몰랐던 것을 보면 넘어졌다가 스스로 일어날 수 있었던 그런 시기였던 것 같다.
보호자의 역할
내가 요양원과 병원에서 일하면서 배웠던 것 중 하나는 환자가 넘어졌을 때, 억지로 내가 할 수 있는 힘의 범위를 벗어나서 환자를 돕지 말라는 것이었다. 힘이 없는 환자를 돕는 것은 마치 물에 빠져서 허우적거리는 사람을 물에서 꺼내는 것만큼이나 힘에 겨운 일이고, 허리와 팔다리 부상을 입기 쉽기 때문이다.
시간에 쫓겨서 또는 도와줄 사람이 없어서 등등의 이유로 많은 간호사들이 몸을 써가면서 환자를 일으키거나 이동시키는데 부상의 순간은 예고 없이 찾아온다. 늘 했었던 일이어도 순간적으로 허리나 팔다리 근육에 이상이 오곤 하는 것을 종종 목격한다.
보호자는 환자의 상태가 악화되고, 병이 진행되면서, 또는 제니처럼 음식섭취가 현저하게 줄어들면서 환자가 한없이 약해지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리고 제니처럼 젊은 나이의 환자도 걷다가 그냥 이유 없이 넘어지기도 한다. 그럴 때 무조건 환자를 보호자의 힘으로 일으키기보다는 환자가 스스로 일어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좋다. 내가 다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환자를 도울 수 있으면 좋겠지만, 조금이라도 허리나 팔다리에 무리가 간다는 느낌이 들면 적절한 도움을 구하는 것이 좋다.
호주에서 구급차를 불러야 한다면
한국은 이럴 경우 어떻게 도움을 구해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호주의 경우 구급차를 부르면 대원들이 기구를 사용해서 일으켜주기도 하고, 여러 사람이 있을 경우 힘을 합쳐 환자를 안전하게 이동시켜주기도 한다. 호주에서 아픈 사람을 돌보는 분들이 계신다면, 환자가 넘어졌을 때, 내가 도와주기 힘든 경우 주저 없이 구급차 000을 부르면 된다.
구급대원들은 늘 바쁘기 때문에 보통 1-2시간 기다려야 한다. 이럴 경우 넘어진 환자가 편한 자세로 기다릴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중요하다. 밖에서 넘어진 환자라면 날씨에 따라 너무 덥거나 춥지 않도록 도와주고, 쿠션이나 베개 등을 사용해서 엉덩이, 팔, 다리 등이 기다리는 동안 짓눌리거나 너무 심한 압력이 가해지지 않도록 도와준다.
구급차에 전화할 때는 보통 “비응급” non-emergency라고 말해주면 된다. 사이렌이 필요 없다고도 말하고, 환자의 상태 (말기암, 병원 이송 금지 등) 및 환자의 정보 (이름, 생년월일) 등도 함께 전해준다. 집 주소도 상세하게 알려준 후, 해가 진 저녁이나 밤 시간에는 밖에 불을 켜놓아 집을 잘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좋다.
제니는 4월 8일 넘어진 이후 상당히 자주 넘어졌고, 죽기 며칠 전부터는 거의 매일 넘어져서 그 당시에는 아주 건장한 친구 부부를 불러 제니를 일으켜 세워달라고 부탁을 했던 기억이 난다. 1시간을 기다리는 것도 제니에게 상당히 힘든 일이었고, 친구 부부가 새벽이라도 언제든지 불러달라고 해서 염치 불고하고 몇 번을 불렀던 기억이 난다. 제니가 죽기 전 날 제니의 기저귀를 갈아주며 한쪽 엉덩이와 허벅지가 보라색으로 아주 크게 물들어 있는 것을 봤다. 아마도 약했던 왼쪽으로 많이 넘어졌던 것 같다. 얼마나 아팠을까… 아프냐고 물으면 늘 아니라고 했었는데 그냥 그렇게 참기만 했던 것일까… 지금 생각하니 참 마음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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