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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암4기 뼈전이 말기암 환자 보호자의 병상일지

말기암 환자 키우던 고양이를 먼저 보내다

by johnprine 2023. 7.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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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4월 25-26일 투약일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2022년 4월 25일.


찰리는 제니가 키우던 고양이다.
보호소에서 입양해 와서 5년 정도 키웠는데
멜버른에서도 또 이곳 시골에서도
밖을 자유롭게 드나들었다.


제니와 함께 산 지 3년이니 찰리와도 3년이다.
찰리는 내 배 위에서 자는 날이 많았고
원하는 게 있으면 확실하게 말하는
자기주장도 고집도 센 고양이다.



찰리는 나를 무척이나 따랐지만
그래도 엄마 바보였다.
엄마가 아팠을 때에도 그림자처럼 따라다녔고
엄마 몸에 올라타서 자거나
엄마의 안락의자에 어떻게든 올라가서
엄마와 함께 시간을 보내려던 엄마 바보…


제니와 나는 많은 상의를 한 끝에
제니가 세상을 떠나면
제니의 의붓언니에게 찰리를 보내기로 했다.
제니의 의붓언니는 노숙자를 돕는 일을 하는
사회복지사이자
동물을 엄청나게 사랑하는 애묘 애견인이기도 했다.
제니의 언니가 먼저 찰리를 맡아주겠다며
제니 사후에 직접 먼 길을 운전해 와서
찰리가 쓰던 물품과 찰리를 데려가겠다고 했다.


그렇게 우리는 찰리와의 작별을 맘에 두고 있었다.
건강한 찰리와 애틋한 작별을…


그러던 4월 25일 자정.
여느 때처럼 찰리는 밤마실을 가고 싶어 했다.
보통 나가면 1-2시 사이에 돌아오던 찰리.
아직도 기억난다.
뒷문을 열어달라며 보채던 그 눈빛과 발짓…


그게 찰리의 마지막이었다.
지난 5년 동안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다는 제니.
난 새벽 2-4시에 시간마다 나가
집 밖에서 찰리를 불러보다
5시 즈음에는 동네 한 바퀴를 걸으며
찰리의 이름을 불러댔다.


오전에는 페이스북에 찰리를 찾는 글과 사진을 남기고
오후에는 찰리를 본 것 같다는 사람이 사는 지역으로
5분 정도 운전을 해서
곳곳을 돌며 찰리의 이름을 불렀다.


제니는 잘 걷지도 못하면서
자꾸 찰리를 찾아야 한다고 밖으로 나갔다.


그렇게 25일 하루가 지나갔다.



사랑둥이 찰리



느지막이 잠에서 깬 나는 휴대폰을 쳐다봤다.
페이스북 메시지가 모르는 사람에게 와있다.
본인은 길 건너 사는 내 직장 동료의 이웃이라며
찰리를 종종 봤다는 글로 시작되었다.


“어제 찰리를 차 밑에서 봤어.
주소는 ….. 야…  하얀 차 밑에 있었어.
미안하지만 찰리가 살아있지 않았어.
아직 있었으면 좋겠다. “


난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잠옷을 입은 채로
실내용 슬리퍼를 신은 채로 뛰어나갔다.
제니가 날 쳐다봤지만
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집에 나가자마자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찰리가 보였다.
내가 몇 번을 지나며 찰리를 불렀던
그 길에, 차 밑에 찰리의 하얀 배가 보였다.


실성한 사람처럼 달렸다.
바닥에 엎드려 찰리의 차갑고 굳은 몸을 끌어냈다.
작은 녀석이 참으로 무겁다.


”아가야… 아가야… 아가야…“


엉엉 우는데 눈물이 흐르지 않았다.
다른 단어도 말도 나오지 않았다.


”아가야… 아가야…“


겨우 찰리를 끌어내 안고 일어서는데
집이 너무 멀다.
찰리는 무겁고 집은 멀고
무릎에 힘은 없다.


걸으려다 찰리를 안고 주저앉는다.


차 한 대가 한참 멈춰서 있덛니
안에서 아저씨가 내린다.


”괜찮아요? 담요 갖다 줄게 여기 있어봐요.
우리 집 바로 저기예요. “


아저씨가 나 때문에 갈 길을 못 가는구나…


”괜찮아요…“


라고 말하며 집으로 향한다.
집이 너무나 멀다.
다리에 힘이 자꾸 풀린다.


”제니!!! 제니!!! 찰리 애착담요 좀 갖다 줘
내 침대 위에 있어! “


잘 걷지도 못하던 제니가 허둥지둥
빠르게 움직여 빨간 담요를 갖고 온다.


아저씨는 그제야 슬그머니 자리를 떠난다.


찰리를 제니에게 안겨준다.
찰리를 받아 든 제니가 울기 시작한다.


나도 그제야 눈물이 쏟아진다.


제니 위 찰리



찰리를 한참 안고 키스를 퍼붓다
찰리가 제일 좋아하던 뒷마당 의자에 놔준다.


제니가 갑자기 흐느끼며 말한다.


“정말 슬픈 게 뭔 줄 알아?
나도 곧 죽는다는 거야.
몇 주 안 걸리면 나도 죽는다는 거야.”


죽음을 목전에 앞두고 살지 않는 나로서는
그 말을 듣고 너무나도 놀랐다.
아.. 찰리를 잃은 슬픔보다
본인이 세상을 떠난다는 슬픔이 훨씬 크구나…


하늘도 슬펐는지 비가 갑자기 쏟아진다.
지체할 수 없어 찰리를 차에 태우고
동물 병원으로 향한다.


제니는 찰리를 뒷마당에 묻어주고 싶어 했지만
곧 제니도 떠나고 나도 떠날 이곳에
찰리를 혼자 두고 가고 싶지도 않고,
대충 마당에 묻어버리는 느낌도 싫어
동물병원에 인계해서 화장을 하기로 한다.


난 아무것도 먹을 수 없었고
눈물만 하염없이 흘렸다.
처음 경험하는 펫로스…
그 누가 내 곁을 떠난 것보다 힘들었다.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슬픔이었다.


제니는 의외로 담담해 보였다.
찰리의 죽음보다는
본인의 죽음이 목전에 있기도 했고,
슬퍼할 힘도 없는 것 같았다.


그렇게 4월 25일과 26일이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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