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니는 그녀의 GP (General Practitioner, 동네주치의), oncologist (암전문의) 그리고 완화의료팀 이렇게 셋을 주기적으로 만났다. 그중에서 완화의료팀은 가정 방문을 주 2-3회 하면서 제니의 증상을 가까이서 관찰하고 여러 도움을 주었기에 그들과 밀접하게 소통하면서 도움을 주고받는 것이 필수적이었다. 이 포스팅에서는 케어러/간병인/보호자로서의 내가 폐암 4기 환자 제니를 위해 한 일들을 적어보려고 한다.
환자의 증상 변화 기록
폐암 증상인 숨참과 흉통, 뼈전이 증상인 허리와 다리 통증 이외에 제니는 다양한 증상이 나타났다. 복부 팽창, 다리 부종, 손, 다리, 발가락 저림, 변비 등의 부가적인 증상이 거의 매일 하나씩 나타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처음에는 증상이 하나 정도 부가적으로 나타나서 그 증상만 전달하면 되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증상이 하나씩 더해지면서 (없어지는 증상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복부팽창만 초반 몇 주 정도 지속되고 저절로 없어졌고, 나머지 증상은 팬케익 쌓아 올리듯 더해졌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제니의 기억력에도 나의 기억력에도 한계가 있었다. 완화의료팀이 매일 올 수도 있었지만, 제니는 그들이 매일 방문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에, 증상이 변하는 것을 기록해 두고 그들에게 전달해 줄 필요가 있었다. 제니의 기억력이나 사고체계에 큰 변화가 있었던 것은 3월이었지만, 그전부터 고용량 통증 완화제를 복용해서인지, 제니는 나에게 완화의료 팀에게 전달할 사항을 기억해 달라고 부탁을 했다.
"내가 요즘 잘 잊어버리는 것 같아."
"그래?"
"응... 약 때문일까? 여튼 기억이 가물가물할 때가 많은 것 같아서.. 간호사 오면 같이 있어주고, 해야 할 말도 내가 잊어버리면 네가 해줬으면 좋겠어."
"안 그래도 적어놓고 있어. 나도 다 기억 못할 때도 있어서..."
"보통 뭐 적어둬?"
"증세가 달라졌다던가, 악화되었다던가 그런거... 그리고 필요한 물품들 그런 거 적어둬."
그렇게 제니의 동의를 받고, 제니의 증상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잘 관찰하고 기록해 둔 다음 완화의료 팀에게 전달하는 것이 나의 역할 중 하나였다.
물품 관리 및 재고 조사
12월 말에 완화의료 팀은 각종 주사기와 피하주사 교체 물품, 약물 제조 물품을 담은 아주 큰 검은 상자를 놓고 갔었다. 아마도 그들은 내가 간호사가 아니었다면 그 박스를 매일 체크하면서 물품을 채워 넣었을 텐데, 그들이 하는 일을 내가 집에서 하고 있었기에 그들에게 그 박스를 점검할 기회가 줄어들었고, 어떤 물품이 부족한지 그들이 알기 어려워졌다. 내가 스스로 주사기에 약을 덜어 놓거나, 배에 꽂은 피하 주사기를 바꾸는 일을 했었기에, 어떤 물품이 부족한지 기록하고 물품이 떨어지기 전에 그들에게 연락해서 부탁하는 것이 중요한 일 중 하나였다. 특히 피하주사 용 바늘이나 스티커 등은 늘 1-2개 더 갖고 있어야 했다. 종종 피하주사 자국이 주사를 교체한 지 하루 만에 부풀어 오르거나 염증이 생기는 경우가 있었기 때문에 늘 넉넉한 양을 예비로 갖고 있는 것이 중요했다.
모르핀이나 미다졸램 등은 정확한 용량을 계산하기 위해서 주사용 물이나 식염수로 희석해서 썼기 때문에 그런 것들도 항상 넉넉히 갖고 있어야 했다.
복용약 횟수, 복용량 등 기록하기
완화의료 팀이 부탁한 것은 아니었지만, 나는 상당히 꼼꼼하게 제니가 복용한 약, 시간 등을 기록해 두었다. 첫 일주일 그들이 하는 일을 지켜보니 약을 언제, 왜 먹었고, 하루에 어떤 약을 얼마나 먹었는지를 계산해서 그들의 기록장에 기록하는 것을 봤기 때문이다. 아마도 약 복용 횟수와 양을 적어서 적절하게 약 종류를 바꾸거나, 한 번에 투약해야 할 약의 용량을 바꾸기 위해 기록하는 것 같았다.
다른 의료진 사이에서 일어난 일 전달하기
제니는 완화의료 팀 외에도 동네 주치의와 암 전문의를 주기적으로 만났기 때문에 그들이 추천한 약이라던가, 그들과의 마찰 (완화의료 팀이 추천해 준 약을 처방해 주지 않거나 늦게 처방전을 보내는 등)이 생길 경우를 완화의료 팀에 알려 간호팀이 적절하게 개입해서 문제를 해결하도록 돕는 것도 내 역할 중 하나였다. 완화의료팀은 이메일로 거의 모든 정보를 주치의와 암전문의에게 받는 것 같았지만, 제니와 내가 내원해서 들은 이야기를 상세하게 알지 못했기 때문에 그것을 알리는 것도 내 책임 중의 하나였다. 완화의료팀이 추천한 약 등을 주치의나 암 전문의에게 전달하는 것도 중요했다. 서로 이메일을 주고받는다고는 하지만, 종종 "받지 못했다, " 또는 "확인하지 못했다"라는 말로 서로를 당황시켰기 때문에 중간에서 의료진들이 같은 정보를 주고받았는지를 확인해야 했다. 일관된 케어를 받기 위해서는 모든 팀이 같은 계획을 갖고 있어야 했기에 다른 팀들과 의료진들 사이에서 적절하게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중요했다.
처방전 정리 및 약 확보하기
의료진들 사이의 마찰은 딱히 마찰인 것도 아니었다. 약국에 비하면... 약국과의 마찰은 상당히 잦았다. 약국은 말기암 환자인 제니에게 너무 많은 약을 복용한다며 약의 처방전을 가져가도 처방해 주지 않는다거나, 처방전이 전자동으로 보내졌음에도 안 받았다고 우기는 등의 일이 잦아서 그럴 경우 완화의료 팀과 주치의의 힘을 빌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다행이도 그들은 환자를 위해 약국에 전화를 걸어 언성을 높여주거나, 일이 해결될 때까지 전화를 끊지 않는 등 정말 많은 도움을 줬다.
처방전을 잘 정리하는 것도 내 몫이었다. 다량의 약을 갖고 있으면 정말 편했겠지만, 몰핀이나 미다졸람은 5개의 앰풀이 든 상자를 2개 가져올 수 있는 것이 맥시멈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처방전이 동시에 2개 발행되기에 그나마 조금 더 많은 양의 약을 손에 쥐고 있을 수는 있었지만, 제니의 증상이 악화되면서 처방전 2개가 동시에 주어져도 약은 빠른 속도로 없어져버렸다. 악화되는 증상과 투여하는 약의 양은 비례했기 때문이다. 결국 처방전이 발행되고 며칠 되지 않아 의사에게 또 처방전을 달라고 연락해야 했다.
보통 의사들은 금요일 오후 3시면 퇴근을 하기 때문에 그 전에 일을 해결하기 위해 늘 완화의료 팀의 도움을 빌어 약과의 전쟁을 펼쳐야 했다. 주치의가 퇴근하거나 결근을 하면, 주치의의 동료 의사에게까지 전화를 하는 등의 일을 해가면서까지 약을 확보해야 했기에 처방전과 약 확보하기는 거의 전쟁 수준이었다.
신체적, 심리적 동행
제니가 가는 곳에는 거의 100% 내가 따라다녔다. 장 보러 갈 때에도, 주치의를 만나거나 암전문의를 만날 때에도 내가 같이 갔었다. 사실 제니가 겉모습이 너무 멀쩡했고, 나도 폐암 4기 환자를 가까이서 본 것은 처음인지라, 처음에는 제니가 주치의를 만나러 갈 때 병원 앞에 내려주는 등의 일만 했었다. 그러나 첫 주치의 방문에서 그녀가 입구를 통과하자마자 어지러워서 쓰러졌다는 이야기를 듣고, 난 그녀가 가는 모든 곳을 따라다녔다. 사실 그게 그녀가 원하는 일이기도 했다. 그녀의 가장 큰 두려움은 넘어져서 다쳐서 거동이 불가능해지는 일이었다. 암이 왼쪽 허벅지에 크게 자리 잡고 있었기에 그녀의 두려움은 공포 수준이었고, 그녀는 나에게 장 보러 가서 물건을 들어주거나 운전을 하는 것 등을 부탁했다. 위에 언급한 대로, 제니의 기억력이 조금 떨어지기도 했었고, 또 암전문의를 혼자 만나러 가는 것에 불안함이 크다고 했기에 의사를 만나러 갈 때도 동행했다. 의사의 말을 기억해서 다른 팀에게 전달하는 것, 심리적/신체적 도움을 주는 것 등 역시 내 역할이었다.
11월 폐암4기 진단을 받은 후 1월 말까지만 해도 이 정도가 내 역할이었다. 제니의 증상이 악화될수록 내 역할은 조금씩 늘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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