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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암4기 뼈전이 말기암 환자 보호자의 병상일지

폐암4기 뼈전이 말기암 환자의 본인 짐 정리하기

by johnprine 2023. 2.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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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니와 나는 2년 반 전에 하우스메이트로 만났다. 당시 제니는 멜버른에서 혼자 고양이 찰리를 데리고 시골로 이사를 왔는데 혼자 사는 사람치고 짐이 엄청나게 많았다. 특히 옷은 본인의 옷장과, 6개 서랍장, 그리고 작은 방에 행거 2-3개에 아주 빼곡히 차 있었다. 갱년기로 인해 살이 엄청나게 찌고 또 빠지는 과정에서 구입했던 사이즈 6부터 16까지의 옷이 다 있었다. 20대 초반에 공연할 때 (제니는 뮤지컬 배우였다) 입던 옷부터 50대까지의 옷, 신발, 가방을 다 갖고 있었다. 이 포스팅에서는 제니와 함께 짐을 정리하면서 느꼈던 일들을 써볼까 한다. 

 

 

원래 짐이 많았던 그녀

 

짐이 엄청나게 많았던 그녀와 소형 차에 다 넣어도 공간이 남았던 나. 우리는 매우 달랐다. 하우스메이트로 만난 지 몇 달 안 되었을 때부터 그녀를 도와 op shop (중고를 받아 팔고 이윤을 사회봉사에 쓰는 단체들이 운영하는 가게, 호주에 굉장히 많고, 많은 사람들이 이용함, 한국 아름다운 가게, 굿윌, 구세군 같은 경우)에 다양한 물건 (옷, 신발, 책, 가방, 장식품 등등)을 기부하곤 했었다. 처음에는 두 세 박스를 채워 중고가게에 떨궜지만, 제니는 일주일에 4일을 간호사로 야간일을 하고 있었기에 둘이 같이 정기적으로 기부를 하러 다니는 것은 좀 힘들었다. 결국 작은 방은 박스로 쌓이고 또 쌓였다. 왜냐하면... 제니는 기부하는 것만큼이나 많은 옷을 사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6개월에 한 번 정도 자원봉사자가 와서 15-20개에 꽉 찬 옷과 짐들을 가져가곤 했다. 

 

 

그렇게 원래 짐이 많던 제니가 11월 폐암 4기 진단을 받고 나에게 말했다.

 

 

"빨리 하나하나 기부해야겠다. 뭐부터 해야할까?"

 

"글쎄... 왜 빨리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내가 짐이 좀 많아야지. 이걸 누가 다 정리해. 내가 할 수 있을 때 해야지."

 

"아... 너무 걱정하지는 마."

 

"아니... 내가 할 수 있는 건 하고 싶어서 그래."

 

"그런 것도 좋긴 하겠다."

 

"네가 좀 도와줄 수 있지? 요즘 조금만 움직여도 숨차서."

 

"그럼... 물건 옮기고 그러는 건 내가 할게. 걱정하지 마."

 

 

그 이후로 제니는 작은 방에 박스를 몇 개 놔두고 생각이 날 때마다 옷이나 신발, 다 읽은 책 (제니는 독서광이었다) 등을 넣기 시작했다. 그전에도 비슷하게 하던 일이었지만, 진단을 받고 나서는 더 의식적으로 하는 듯했다. 

 

 

"오늘은 뭐 넣고 있어?"

 

"음... 아예 안 입는 옷."

 

"아.. 오랫동안 손 안 댔던 거?"

 

"어... 이런 바지. 요즘 이런 거 아무도 안 입잖아."

 

 

그렇게 옛 옷을 보던 제니는 공연할 때 입었던 드레스에서 멈췄다. 

 

 

"이거... 나 20대 초반에... 공연할 때 입었던 거고, 이건 시상식 갔을 때 입었던 거야. 엄마가 사줬어."

 

"어... 그것 기부하게?"

 

"음... 아니. 이건 보낼 준비가 안 된 것 같아." 

 

 

제니와 옛 물건을 보다 보니 엄마가 제니 초등학교 때 사용했던 요리책, 제니의 초등학교 시절 편지와 30-40년 된 사진들이 나왔다. 제니는 그 어떤 것도 버리지 못했다. 

 

 

난 가만히 바라보기만 했다. 제니의 맘이 어떨까? 아마도 물건은 그냥 기부하고 안 하고의 문제가 아니었던 것 같다. 살아있음에 대한 징표일지도 모르겠다. 추억, 기억을 갖고 사는 삶에 대한 징표. 제니는 30년은 된 화려한 드레스도, 40년이 넘은 각종 사진과 문서 그리고 기억 조각 그 어떤 것도 버리지 못했다. 

 

 

 

생존율에 대한 환자의 직감 

 

제니가 폐암 4기를 진단받은 것은 11월, 살 기간이 두어 달 남았다고 들었던 것은 12월 말이었다. 호주는 12월부터 여름이 시작되어 3월 정도까지 여름이 지속된다. 4-5월에는 조금 선선한 가을이고 6-9월은 겨울이라고 보면 된다. 

 

제니는 짐 정리하며 기부하는 것을 "de-cluttering"이라고 부르면서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정리를 하려고 노력했다. 아마 사진에 있는 30일에도 짐정리를 하며 발가락에 쥐가 났고, 마그네슘 스프레이로 쥐 난 것을 달랬던 것 같다. 

 

짐을 정리하던 중 제니가 나를 쳐다봤다. 

 

 

"내가 언제까지 살 수 있을까?"

 

"응?"

 

"이거 겨울옷이잖아. 만약에... 내가 3월 이후까지 살면 어떻게 하지?"

 

"그럼 이런 옷들 놔두자."

 

"근데 두 달 남았다고 했잖아. 그럼 2월이고... 2월은 여름이니까..."

 

"음..."

 

"근데 또 만약에 3월까지, 아니면 그 이후에도 살면... 

겨울옷이 있어야 하잖아. 다시 사기는 아깝고... "

 

"그럼 놔두자. 잘 입을 것 같은 거는 놔두자."

 

"그래... 어차피 안 입었던 겨울옷 코트 같은 거는 기부하고, 

집에서 입는 것 위주로 놔둘까?"

 

" 응. 그러자. 집에서 입는 건 그대로 놔두자. 혹시 모르잖아.

일찍 추워질 수도 있고. 가는 건... 정말 아무도 몰라.

자꾸 두 달이라고 생각하지 마."

 

 

제니는 본인이 두 달 남았다는 말을 듣고도, 조금 더 살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는 듯했다. 당연하다 싶었다. 제니의 상태는 조금씩 악화되고 있었지만, 인터넷이나 드라마에서처럼 드라마틱하게 나빠지고 있지 않았다. 스테로이드를 복용하고 있어서 식욕은 아프지 않을 때보다 더 좋았고, 평소 좋아하던 가드닝도 조금씩 할 수 있는 정도였다. 암전문의가 두 달 남았다고 해도, 내가 보기에도, 제니가 느끼기에도 상태가 그렇게 확확 나빠지고 있지 않았다. 1월 30일이면 (암전문의의 예측대로라면) 살 날이 한 달 남짓 또는 두 세 주 남은 상태인데 제니는 먹는 것, 걷는 것, 생활 등의 면에서 독립성을 잘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면 환자의 상태는 환자가 제일 잘 아는 것 같다. 아마 짐 정리를 하면서도 3월 이상으로 살 것을 느끼고 있지 않았나 싶다. 암전문의 말대로면 2월에는 하늘나라에 갔어야 하는 제니가 5월 중순까지 살았으니... 겨울옷을 버리지 않았던 것은 정말 탁월한 선택이었다. 본인의 생존율과 생존기간에 대한 직감이 어느 정도 맞는 것 아니었을까... 

 

 

1월 29일 병상일지 요약

 

 

1월 29일 병상일지 

 

제니는 새벽 다섯 시경에 일어나서 숨찬 증상과 왼쪽 갈비뼈 통증으로 혼자 고생을 했다. 다시 잠에 든 것이 8시고, 내가 오후 3시 반에 완화의료 팀 간호사가 가정방문을 하기 위해 집에 들렀을 때 그녀를 깨웠으니 한참 동안 밤잠/낮잠을 잤다. 제니는 이 날 간호사에게 3일 동안 숨찬 증상과 압박감, 위쪽 가슴 중앙에서 느껴지는 통증이 개선되지 않고 있다고 했다. 부종도 심해져서 frusemide를 복용했다. 

 

1월 30일 병상일지 요약

 

1월 30일 병상일지 

 

이 날은 전날보다는 나았다. 여전히 가슴 중앙 압박감과 다리 부종의 불편함을 호소했지만 짐 정리를 할 수 있을 정도였으니 상태가 전날보다는 호전되었던 것 같다. 이 날은 샤워 후에 허리와 숨찬 증상이 심해서 엔돈, 모르핀, 클로나즈팸을 함께 복용했다. 그리고 다시 MS Contin 75mg을 아침저녁으로 복용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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