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언제까지 살 수 있다는 것을 안다면 어떤 기분일까? 지금이 2023년이니 내가 2043년 5월에 죽는다는 말을 들으면 그다지 실감이 나지 않을 것 같다. 그런데 내가 두 달 뒤에 죽는다거나 또는 2주 뒤에 죽는다는 말을 들으면 어떤 기분이 들까? 과연 말기암 환자는 자신의 기대수명을 듣고 싶을까? 듣는 것이 좋을까? 아마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누군가는 기대수명을 듣고 차분히 삶을 정리하고 싶을 것이고, 누군가는 절망에 빠져 더 빨리 생을 마감할지도 모르겠다. 이 번 포스팅에서는 기대수명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기대수명 6-8주
제니는 11월 폐암 4기 뼈전이 진단을 받았다.
그리고 같은 해 크리스마스 즈음, 코로나 사태로 인해 전화로 상담을 하게 되었다.
"혹시 기대수명 알고 싶어요?"
"아... 아니기도 하면서... 알고 싶기도 하죠..."
"그렇군요."
"그냥 몇 달 정도? 이렇게 이야기해주실 수 있나요?"
"음... 지금 몇 달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에요.. 몇 주예요... "
"네? 몇 주라고요?"
"네... 6-8주... 길면 2달 정도라고 말씀드릴 수 있어요."
크리스마스에 받은 너무나도 크고 힘든 선물이었다. 제니는 울었고, 크리스마스를 마지막으로 함께 보내기 위해 온 제니의 아버지는 충격에 빠졌다. 제니가 너무나도 멀쩡해 보였기 때문에 더 그랬을 것이다. 아버지가 멜번 집으로 가시고, 제니는 조금씩 우울해진 듯싶었다. 늘 자신의 감정을 잘 숨기고, 또는 잘 조절하면서 살던 제니였기에 그녀의 변화는 눈에 띄었다. 우는 일이 잦아졌다.
완화의료 팀은 제니에게 심리상담을 권했다. 그러나 상담, 종교 등에 관심이 전혀 없던 제니는 콧방귀도 뀌지 않았다. 제니의 우울함은 커져만 가는 것 같았다.
기대수명 전달에 대한 아쉬움
"두 달 남았다는데.. 아니 두 달도 안 남았다는데... 난 앞으로 그냥 기다리면서 사는 건가?"
"무슨 말이야?"
"뭘 하겠어? 두 달도 안 남았다잖아. 그냥 이렇게 죽을 날만 기다리며 사는 거밖에 뭐가 있어?"
"글쎄... 두 달이건 이 주건 사는 거면... 그 동안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면 되지 않을까?"
"그게 의미가 있어?"
"그렇게 치면 밥도 안 먹고 씻지도 않고 살아야지. 무슨 의미인데... 그냥 사는 거지. 사는 동안 하고 싶은 거, 해야 할 거 하는 거지. 의미가 있어서 하는 건 아니야. 그냥 하는 거야. 살아 있으니까."
"두 달 남은 사람이 뭘 사고 그러면 비웃지 않을까?"
"그걸 누가 알아? 네가 뭘 사던, 입던, 먹던 누가 상관이고, 누가 상관하던 뭐 어때?"
"나... 중국 사이트에서 되게 귀여운 드래곤 장식품 두 개 봤는데 그거 사고 싶어..."
"그럼 사. 그리고 너 책 보는 거 좋아하잖아. 요즘 왜 책 안 사?"
"책 수십 권 안 읽은 게 있으니까."
"근데 정말 읽고 싶은 책 있으면 사서 읽는 게 좋지 않을까? 넌 쇼핑도 좋아하는데 왜 참아?"
"그래? 사실 최근 나온 책 하나 사고 싶은 게 있었어."
"그럼 사서 읽어야지. 뭐 하러 얼마 안 남은 시간을 남 눈치 보면서 살아? 하고 싶은 거 해..."
의외였다. 제니는 활력을 되찼았다. 귀여운 드래곤 장식품도, 화분도, 좋아하는 책도, 침구류도 맘껏 쇼핑을 하기 시작했다. (그게 나중에 나에게 부메랑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것은 이 때는 예상하지 못했다.)
한참 우울해하며 힘들어하는 제니를 보며, 또 작은 대화로 활력을 찾은 제니를 보며, 의사가 단 한 마디만 해줬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기대수명일 뿐이에요. 하고 싶은 것 하시면서 시간을 보내시는 게 좋아요."라는 말만 해줬어도 조금 달라지지 않았을까... 물론 의사의 책임 중에 기대수명을 듣고 우울증이 올 환자를 위해 미리 충고나, 조언을 해주는 것은 없을 것이다. 의사는 환자가 듣고 싶다고 했기에 기대 수명을 말해줬고, 환자는 우울해졌을 뿐이다. 모든 환자가 다 우울해지는 것도 아니기에 의사를 탓할 수는 없다. 그냥 아쉬웠을 뿐이다. 덜렁 "6-8주 남았어요."라고 이야기했을 때 그 짐을 받은 사람은 무거운 짐과 감정적 책임을 동시에 져야 한다는 것을 이해해 줬으면 참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을 뿐이다.
기대수명 2주
제니는 2월 3일 암전문의와 함께 일하는 간호사에게서 전화를 받았다. 그리고 충격적인 표정으로 나에게 다가왔다.
"나 2주밖에 안 남았데..."
"무슨 소리야?"
"전에 흉수 제거하라고 그래서 병원 갔었잖아. 그때 찍은 거 보고 하는 말인 것 같아."
"누가 그래? 누구랑 통화했어?"
"그 간호사... 암 전문 간호사 말이야."
우린 둘 다 충격에 휩싸였다. 크리스마스 즈음보다 좀 더 통증이 심해지고 숨찬 증상도 심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또 그렇다고 해도 눈에 띄게, 2주 만에 세상을 떠날 것처럼 심해진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난 사실 아주 많이 나빠진 것을 잘 모르겠어. 근데 2주 남았다니 너무 황당해."
"어... 나도 사실 그래. 옆에서 보는데... 2주 남았다는 게 이해가 잘 안 되는데?"
"그러게... 진짜 모르겠다. 나보다 전문의가 더 잘 알겠지?"
"글쎄... 나도 모르겠네..."
너무 황당해서일까, 비현실적이어서일까, 제니는 12월에 2달도 안 남았다는 기대 수명을 들었을 때보다 우울해하지 않았다. 물론 충격을 받고 어쩔 줄 몰라하긴 했지만, 우울함이 커지진 않았다. 제니는 온라인 쇼핑을 계속했다. 2주 남았다는 말은 개의치 않는 듯, 배달에만 1-2주 걸리는 중국 등지에서도, 호주 내에서도 온라인 쇼핑을 계속하며 시간을 보냈다.
기대수명 전달보다 더 중요한 것
아마도 환자보다 환자 가족이나 간병인이 기대수명에 대해 더 알기 원할지도 모르겠다. 긴 병에 장사 없다고, 어디가 끝인가를 알고 싶은 것은 당연한 것이다. 맘의 준비도 해야 하고, 시간과 물질적인 준비도 필요하기 때문에 기대수명을 전달하고, 받는 것은 어찌 보면 필수적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기대수명 전달에 대한 접근법, 또는 기대수명 전달과 함께 제공할 수 있는 서비스가 완화의료에 포함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새각을 해본다.
"어떻게 남은 수명을 사느냐"에 대한 부드러운 접근이 있다면 어떨까? 기대수명을 전달하기 전이나 후로, 환자가 평소에 무엇을 좋아하고, 즐기는지, 또는 무엇을 해보고 싶었는지 등을 이야기하면서 시간의 제한만 전달하기보다는, 시간의 제한에서 즐길 수 있는 것들로 시선을 바꿔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인지치료처럼 말이다. 내가 가진 시간이 이렇게 제한되었구나, 그래서 힘들다, 우울하다는 생각의 방식을 내가 가진 시간이 이렇게 제한이 되었다, 나는 이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자유가 있다 등으로 말이다.
의료팀에서 이러한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한다면 가족, 친구, 간병인의 몫인 것 같다. 마냥 우울하거나 힘들어하는 환자를 위해, 남은 시간 즐길 수 있는 것을 찾아주는 것, 우울함의 방향을 조금은 바꿔주는 것... 아마 그것이 말기암 환자의 옆에 있는 사람들의 몫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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