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1월 폐암 4기 뼈전이 진단을 받은 제니는 폐절제 수술이 불가능하고, 뼈로 전이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완화의료팀에게 남은 삶을 맡기고 적극적 치료는 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했다. 당시 받은 기대 수명은 2월 초-중순 정도까지. 그러니까 4개월 남짓이었다. 그러나 2022년 3월 말에도 제니는 여전히 독립성을 유지하며 생활하고 있었다. 변화가 참 더디다는 생각을 하던 나는 과연 제니가 죽기는 할까 라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그러던 2022년 3월 말부터 적극적인 변화가 눈에 띄기 시작했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말기암 환자의 죽기 전 5-6주에 나타난 변화에 대해 말해보려고 한다.
섬망증상

이전 포스팅에서도 언급했지만 섬망증상은 가장 큰 변화 중 하나였다. 특이했던 것은 이게 24시간 내내 나타나는 것이 아니어서, 제니가 언제 섬망증상을 보이고 언제 안 보이는지 알 수가 없었다. 예를 들어 3월 29일 투약노트를 보면 제니가 옆집 개가 펜스를 넘어 들어와 제니의 몸을 덮쳐 넘어졌다는 말이 쓰여있다. 당시 난 제니의 말을 처음에는 믿지 않았다. 어른 키높이 정도 되는 펜스를 넘어 개가 들어왔다는 것 자체도, 제니를 덮쳐서 제니가 넘어졌다는 말도 다 믿지 않았다. 그전 주부터 섬망증세가 나타났기 때문에 섬망증세의 하나인 줄 알았다.
제니의 말이 이해가 안 돼서 제니와 함께 뒷마당에 나가 담장을 보는데 옆집 개의 머리가 쑤욱 올라와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아마도 옆집 담장 아래 받침대나 무엇이 있었던 것 같았다. 그 개는 곧 뛰쳐나올 것 같았다. 제니는 까진 무릎을 나에게 보여주며 웃었다.
“다행히도 저 개가 정말 어린것 같아. 그냥 나랑 놀고 싶었나 봐. 계속 달려들고 냄새 맡고… 그러다 엉켜서 내가 넘어진 거지.. 크게 넘어진 건 아닌데 이러다가 뼈가 부러지면 어쩌나 걱정이 되더라고. 우리 엄마가 뼈전이로 등허리에 암이 있었는데 그때 재채기 하다가 부러졌잖아… 넘어지면서도 부러지면 큰일이라는 생각만 들었어.”
난 당장 이웃에게 가서 이 사실을 말하며 조치를 취해달라고 했다. 제니가 삶의 마지막까지 가장 원하던 것은 다름 아닌 독립성이었기 때문이다. 뼈가 부러지면 그때부터 독립성은 상실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빠른 조치가 필요했고, 이웃은 그 주말 담장에 롤러 비슷한 것을 설치했다.
이야기가 다른 곳으로 갔는데, 삶의 마지막 몇 주에 자주 보이는 것이 섬망증상이다. 헛것을 듣거나 보는 등의 증상인데 100% 나타난다고 할 수는 없지만 많은 사람이 죽기 전 이 증상을 보인다. 그러나 제니처럼 늘 이상한 것을 보거나 듣는 것이 아니다. 흔히 말해 ”왔다 갔다 한다 “는 말이 딱일 것 같다. 어느 날은 거의 하루 종일 멀쩡하다가도 어느 날은 엄마랑 이야기했다, 같이 일하던 동료가 방문 와서 놀았다 등등 다양한 섬망증상이 나타났다.
그리고 섬망증상은 조금씩 심해지기 시작했다. 계속 왔다 갔다 하긴 하면서도 점점 심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눈은 점점 풀려있고 초점이 잘 맞지 않은 듯 보였다. 늘 술이나 약에 취한 그런 눈빛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아마도 고용량의 약을 복용하고 있어서 더 그랬던 것 같다.
음식 섭취의 감소 또는 중단

2022년 3월 28일 노트를 보면 “초콜릿만 조금 섭취”라고 쓰여있다. 내 기억으로는 28일에 먹은 초콜릿이 거의 마지막 음식 섭취였다. 물론 중간에 갑자기 피자를 먹은 일은 있었지만 제니가 의식적으로 음식을 끊은 날이라고 볼 수 있다. 몇 번이나 뭘 먹고 싶은지, 배가 고프지는 않은지 물어봤지만 그때마다 제니는 배도 안 고프고 먹고 싶지도 않다고 했다. 물론 계속 커피와 파인애플 주스는 마시는 중이었기에 완전하게 금식을 하게 된 것은 아니었다.
요양원에서 일하면서 봤을 때, 어르신들이 음식을 거부하면 그것은 삶의 마지막에 왔다는 표시 중 하나였다. 몸이 자연스럽게 죽음을 맞이하는 준비를 한다고 할까… 어르신들의 경우 물마저도 거부하며 며칠 또는 한두 주를 보내다가 생을 마감하는 경우가 많았다. 보통 이럴 경우 억지로 먹거나 마시게 하지 말라고 한다. 자연으로 돌아가려는 몸의 신호라고나 할까… 안 먹어서 고통스럽거나 굉장히 배고프거나 목이 마른 게 아니라면 스스로 음식과 물을 거부할 때는 그것을 존중하는 것도 보호자의 일 중 하나다. 환자의 몸은 스스로 알아서 마지막을 준비하고 있기 때문에 보호자는 환자의 입술이 갈라지지 않도록 입술 보호제를 발라주는 정도의 일만 해도 되는 때가 온 것이다.
기력 감소
2022년 3월 30일 노트를 보면 “혼자서 일어나지 못함”이라고 써져 있다. 아마도 이때부터 제니는 보행 보조기구를 이용했던 것 같다. 그전에는 어떻게 해서든 혼자 일어나고 걸어보려고 했지만 혼자 일어서는 것이 불가능해지면서 보조기구를 이용해서 집고 일어나는 등의 도움을 받았다. 물론 그냥 걸을 때는 여전히 혼자 걸어보려고 했지만 조금씩 기구를 이용하는 일이 잦아지기 시작한 것이다.
혼자서 일어나기 힘들어하고, 기구 사용이 잦아진다는 것은 그만큼 통증은 증가하고 기력은 감소했다는 이야기이다. 통증은 겉으로 보이지 않아서 잘 모르지만, 환자가 혼자 하던 것을 못하게 되었을 때, 몸이 얼마나 쇠약해지고 있는지 눈에 보이게 되는 것이다.
자연적으로 자는 시간이 늘어나고, 깨어있는 시간은 확 줄어들게 되었다. 처음 며칠은 오래 자고 나면 어떻게든 깨어 있어 보려고 노력했지만 불과 일주일 전만 해도 가능했던 밤에 책을 읽고 온라인 쇼핑을 하는 등의 것들이 점점 불가능해지기 시작했다. 방금 5-6시간의 낮잠을 자고 일어났어도 2-3시간 후면 다시 잠이 쏟아지는 모습이 시작되었고, 그렇게 몸은 하루에 2-3시간 깨어있기 위해 대부분의 시간을 자면서 에너지를 충전하는 것 같았다.
에너지 충전 시간은 점점 길어져갔고, 덕분에 통증으로 고통스러워하는 시간도 많이 줄어들었다. 너무 깊게 잠에 빠지면서 고통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깨어있는 시간에는 자주 통증약을 줘야 했지만 자는 동안에는 미동도 없이 자는 제니를 보면서 그나마 자면서 통증을 안 느껴서 정말 다행이라고, 그 시간이 점점 길어져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을 준비하는 증상들
섬망증상의 시작, 음식 섭취 감소 그리고 기력 감소 등은 생의 마지막으로 가고 있다는 신호이자 마지막을 준비하는 환자의 몸과 마음이었다. 보고 싶지만 만나지 못했던 사람들을 섬망증상을 통해 만나고, 몸은 마지막을 위해 비우기를 하고 있었다. 깊고 오랜 잠 덕분에 고통으로 허덕이는 시간도 줄어들었다. 뒤돌아보면 참 오묘한 자연의 섭리였던 것 같다. 마지막을 준비하는 자연의 섭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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