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이 다가올 때 다양한 증상을 겪는다. 제니의 기대수명, 즉, 2월 중순이면 죽을 것이라고 했던 날이 지나고, 난 거의 매일 구글을 찾아보며 어떤 증상이 제니의 증상과 맞는지, 제니의 증상 중 어떤 것이 삶의 마지막을 나타내는지 찾고 또 찾아봤다. 찾을 때마다 느낀 것이지만, 제니는 곧 죽을 것 같지 않았다. 먹는 것도 잘 먹고 있었고, 배변활동도 나쁘지 않았다. 심지어 뼈전이로 인한 통증도, 폐암으로 인한 흉통이나 숨 가쁨도 나쁘지 않았다. 보통 기침을 엄청 하고 피를 토하면 마지막이 다가온다는데, 제니의 기침은 시간이 지날수록 잠잠해져갔고, 피를 토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잘 먹으니 살도 빠지지 않았다. 오히려 스테로이드 부작용과 부종으로 살이 더 쪄보였다. 그런 제니에게 섬망증상이 찾아왔다.
제니의 섬망증상의 시작
아직도 생생하게 생각나는 그 날, 2022년 3월 22일, 제니는 햇살을 받으며 미소를 띈 채 거실 소파 의자에서 뒤를 돌아 설거지를 하고 있는 나에게 물었다.
“일터 파티는 어땠어?”
“어??? 일터에서 파티했어?”
“어제 파티했다고 그러지 않았나?”
“그랬구나.. 난 일 안 가니까 몰랐지. 내가 일터에 친구들이 없잖아. 페이스북에 누가 뭐 올렸어?”
“꿈이었나? 난 네가 파티 갔다왔다고 하는 줄…”
“나 아니고 페이스북일지도 모르지.”
이때까지만 해도 난 제니의 섬망증상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잠에서 깬지 얼마 안 되었기 때문에 꿈이었거나, 일터 사람들과 더 잘 지냈던 제니만 아는 정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3월 22일이었으니 내가 일을 쉬면서 제니만 돌본지 3개월이기도 했고, 일터에서 하는 파티에 초대받거나 열심히 돌아다니는 성격이 아니었어서 나만 모르는 일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었다.
점심을 먹고 부엌을 정리하고 있는데 제니가 옆에 와서 서더니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그거 말야. 줄인거… 그거 어때?”
“무슨 말이야? 커피? 뭐 커피줘?”
난 내가 제니의 영어를 못 알아들었다고 생각하고 대충 추측을 하며 물어봤다.
“아아니이이이~~~ 줄인거 이렇게 주우우우욱 하고 또 이렇게 주우우우욱 하고~”
아직도 희미하게 술 취한 듯 웃으며 (제니는 일년에 술을 두어번도 안 마시는 사람이어서 술을 마신 것은 아니었는데 마치 미소가 그랬다. 술 취한 듯한 그런 표정의 미소) 두 팔을 들어 뭔가를 설명했다.
“엥? 무슨 말이야.”
제니는 내 옷소매를 가르키며 말하기 시작했다.
“이걸 이렇게 붙여서 이렇게 주우우우욱 하는 거…“
갑자기 머리가 띵해졌다. 병원에서는 크리스마스와 부활절 시기에 유니폼이 아닌 것을 입을 수 있었다. 그때 제봉틀을 사서 스크럽을 만들어보려고 했으나 내 손재주로는 무리였다. 전에 재봉틀을 사용해본 적이 있던 제니는 나에게 서너개의 스크럽을 만들어줬다. 그리고 제니는 나에게 본인에게는 작지만 나에게는 좀 클거라면서 스크럽을 하나 줬는데 우린 그걸 내 사이즈에 맞게 하느라 재봉틀로 옆구리 선을 박아서 줄이는 것을 했었다. 제니는 이 기억을 나에게 말하고 있는 것이었다. 무려 2년 가까이 된 일을 나에게 묻고 있었다. 술취한 표정으로…
난 제니가 당황하지 않도록 대충 맞장구를 쳐줬지만, 내 머릿속은 시커먼 구름이 끼는 것 같았고 심장은 사정없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집에 많이 와서… 아휴“
”어?“
”아까 사람들 소리가 엄청 들렸잖아.“
아… 또 섬망증세구나… 그렇게 제니는 몇 번 이상한 말을 하더니 잠을 자러 갔고 새벽까지 깨지 않았다. 그 사이 나는 완화의료팀 간호사에게 전화를 했다.
”저기… 제니가요 섬망증세가… ”
난 한 마디를 하고 엉엉 울기 시작했다. 간호사는 나를 다독여주며 내가 말하기를 기다렸다.
“괜찮아요? 제가 지금 갈까요?”
“아니예요.. 제니 낮잠자서 방해하고 싶지 않아요.”
게다가 간호사의 퇴근시간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방해 안 되게 잠깐 들릴 수 있어요.“
”진짜 괜찮아요. 너무 놀랬어서… 제가 요양원에서 일할 때 섬망증상이 나타나면 보통 2주 안에 죽어서…“
”다 그런건 아니예요.“
”그래도 가족한테 이야기해야겠죠?“
”제가 해드릴까요? 대신 해줄 수 있어요.“
”아뇨… 제가 말할게요. 고맙고 미안해요 울어서.“
”아니예요… 많이 놀라서 그렇다는 거 알아요.“
곧 제니의 큰오빠에게 문자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앞으로는 하루에 한 번이나 이틀에 한 번 문자를 해서 제니 상황을 알리겠다고 전달했다.
내가 섬망증상을 무섭게 생각한 이유
제니와 살기 전 나는 퀸즐랜드 주에 있는 요양원에서 8개월 정도 일을 했다. 내가 일했던 요양원은 해변에서 멀지 않은 곳에, 나름 한적하고 조용하고 깨끗한 동네에 위치해 있었고, 새로 지은 요양원은 4성 호텔급으로 광고되고 있었다. 수영장만 있으면 5성 호텔이라는 말이 돌 정도로 깔끔하고 예쁘고 또 고급스럽게 지어진 곳이었다. 그래서일까… 그곳에는 다양한 나이의 어르신들이 독립성을 유지하면서 또래들과 어울려 살면서 도움도 받기 위해 오시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삶의 마지막을 얼마 안 남긴 환자들 (50대 이상)이 상당히 많았다.
초보 간호사로서 이분들을 돌보면서, 또 여러 어르신들을 먼저 보내드리면서 공통적으로 본 것이 있다면, 삶의 마지막, 그러니까 삶이 1주일도 채 안 남았을 때 겪는 섬망증상이었다. 교수, 파일럿, 작가 등 아무리 지적 수준이 높고, 선망받는 일을 하던 분들도 말기에는 비슷하게 섬망증상을 겪는다는 것을 배운 것이다. 물론 이 증상 없이 가시는 분들도 있었지만, 90% 정도는 섬망증상을 겪는 것 같았다. 적어도 내가 본 분들 중에는…
그래서 내 머릿속에는 섬망증상=죽음 이라는 공식이 새겨졌었던 것 같다. 초보간호사가 요양원에서 다수의 죽음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섣불리 세운 공식이었다. 내 공식에 의하면 길어야 2주 정도 남았을 때 섬망증상이 시작된다는 것이었는데… 제니의 섬망증상이 3월 22일 시작되었다. 아무 예고없이 나타난 제니의 섬망증상은 나에게 다소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50대 초반의 제니에게서 섬망증상을 보게될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나의 공식은 깨졌다
제니의 섬망증상이 시작된 것은 2022년 3월 22일. 그러나 제니는 4월에도 5월에도 살아있었다. 섬망증상=2주 안의 죽음이라는 나의 공식은 보기좋게 깨졌다. 다만 섬망증상 이후 제니가 눈에 띄게 피곤해보였고, 눈에 띄게 잠자는 시간이 늘어났을 뿐…
그리고 제니의 시각적, 청각적 섬망증상은 계속되었다. 제니는 돌아가신 어머니와 작은 오빠도 만나고, 멀리 떨어져서 전화로만 만나는 아빠도 만나는 것 같았다. ‘
섬망증상… 죽어가는 사람에게는 어떻게 보면 축복일지도 모르겠다. 제니는 하룻동안 만났던 사람들을 이야기하며 참 즐거워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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