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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암4기 뼈전이 말기암 환자 보호자의 병상일지

항암치료를 하지 않기로 한 말기암 환자가 듣기 싫어했던 말들

by johnprine 2023. 8.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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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니는 52세의 나이에 폐암 4기 뼈전이 판정을 받았다. 오랫동안 간호사로 암병동, 정형외과 및 응급실 등에서 근무했던 그녀는 검사를 하기 위해 입원했던 첫날 간호사가 항암을 저녁부터 시작하겠다고 말했을 때 본인의 동의 없이 치료를 할 수 없으니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말했다. 간호사는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며 항암을 안 하는 사람은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녀는 간호사의 설득에도 검사 결과가 다 나오고 나서 해도 늦지 않다고 말하며 항암을 거부했다. 후에 그녀의 폐암은 절제술로 가능한 것이 아니고, 척추와 허벅지 등에 뼈전이가 되었다는 것을 안 이후 항암치료를 전면 거부하고 완화의료 팀과 함께 삶의 질을 높이며 남은 여생을 살 것을 결심했다. 병원에서 함께 일하던 동료 간호사들과 의사들은 그녀의 결정에 많은 지지를 보냈으나 그 외 사람들은 그녀의 결정을 잘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 같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제니가 항암치료를 선택하고 가장 듣기 싫어했던 주변인들의 말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왜 포기하는 거야?


어느 날 제니는 나에게 다소 상기된 표정으로 말하기 시작했다.

“난 포기하는 게 아닌데 자꾸 왜 나한테 ‘왜 포기하냐’고 묻는지 모르겠어.”

“누가 그래?”

“아주 가까운 친구는 아닌데, 내 소식을 전해 듣고 전화가 왔어. 왜 포기하냐고 요즘 항암 약 좋다고 그러면서…”

“그래서 뭐라고 그랬어?”

“그 말 듣자마자 아무 이야기도 하고 싶지 않았어. 이미 결론을 내리고 하는 말이잖아. 난 포기한 사람이라고. 마치 내가 삶을 포기한 것처럼, 내가 스스로 죽음을 택한 것처럼 말이지.”

“넌 여러 가지 치료 방법 중에서 선택을 한 건데…”

“맞아. 난 선택을 했어. 항암치료도 좋겠지. 누군가는 고통을 이겨내면서 한두어 달 더 살고 싶겠지만 난 그게 아니야. 통증을 조절하면서 최대한 삶의 질을 높여서 독립적으로 살아가는 것이 내 목표여서 완화의료 통증치료를 선택한 건데… 그게 왜 포기한 거야? 전에 전문의가 나한테 그랬잖아. 오히려 완화의료 통증치료로 항암 치료보다 더 나은 삶을 질을 유지하면서 때로는 더 오래도 산다고.”

“맞아. 나도 기억나. 그 사람이 오히려 네 결정을 존중해 줬잖아. 암 전문의였는데도 완화의료 팀에서 일하던 경험 말하면서…”

“그지. 그랬어. 근데 정말 많은 사람들이 내가 포기했다고 생각하는 게 화가 나고 좀 짜증 나. 아무 대화도 하기 싫어져 그렇게 생각하는 사랑들이랑은…”


제니가 항암치료를 거부한 것은 어머니와 오빠가 모두 항암치료 하는 내내 고생을 했을 뿐만 아니라 결국 암은 재발하고, 또 이어진 항암치료의 부작용으로 엄청나게 고생하면서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게다가 암병동에서 일하면서 항암의 부작용이란 부작용은 죄다 보고 겪었기 때문에, 같은 길을 걷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

완화의료를 선택했던 제니는 치료의 다른 방법을 선택한 것이지 죽음을 선택한 것은 아니다. 어차피 항암치료를 해도 삶을 연장할 수 있는 기간은 수개월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수개월을 고통 속에서 연장해서 보내는가, 남은 삶을 즐겁고 활기차게 보내는가 중 후자를 선택한 것이지 삶을 포기한 것이 아니었다.


암과의 싸움에서 이기자!



암환자들이 많이 듣는 말 중에 하나가


“파이팅! 잘 싸우자!”

는 말일 것이다. 영어로도 암과 싸운다는 말을 자주 하는데 제니는 이 말을 상당히 싫어했다.


“암과 싸운다고 치면 이기는 것은 암이 완전히 없어지는 거고, 암이 안 없어지면 지는 거야? 싸움에는 이기고 지는 것이 있으니까 뭔가 암과 싸운다는 이야기를 하면 내가 이겨야 하고, 그건 암을 없애야 한다는 말인데… 뼈전이는 없어지지 않아. 이미 4기가 되었으면 그건 온몸으로 암이 퍼지기 시작했다는 말이야. 물론 유튜브를 보면 어떤 사람은 4기 암인데 이겨냈다 그런 케이스도 있지. 근데 그런 사람 말고는 다 암에 지는 건 아니잖아.”

“맞아. 암과 싸우는 거라기보다는 그냥 암과 살아가는 다양한 방법이 있는 거지.”

“맞아. 난 암과의 싸움에서 패배를 택한 게 아니거든. 싸울 생각도 없어. 암은 이기고 지는 거랑은 상관이 없으니까. 치료를 통해 없어질 수도 있지만, 치료를 해도 다시 생기고 죽을 수도 있지. 나 같은 경우는 내가 많이 봐서 알지만 결국은 빠른 시일 내에 죽음에 이르게 되어 있어. 근데 자꾸 나한테 싸우자고, 이기자고 그러는 말을 듣는 게 정말 싫어.”


제니는 계속해서 항암을 싸움이라고 표현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을 가졌다. 암환자는 항암을 해서 암이 없어져도 추적 관찰을 수 년동안 하면서 어느 정도의 불안감을 갖고 살아가게 된다. 즉, 암과의 싸움이라기보다는 암과의 생활 또는 불편한 동거가 되는 것이다. 그건 암이 얼마나 심한지 또는 남은 삶이 얼마나 오래 남았는지와 상관이 없다. 암과 함께 하는 생활일 뿐이지, 암과의 싸움에서 이기고 지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는 조금 더 먼저 세상을 떠나고, 누군가는 조금 더 오래 이 세상에 남는 것일 뿐, 결국은 패배를 했서 쓴맛을 보며 씁쓸히 세상을 떠나는 것이 아니다.


제니는 완화의료팀과 함께 통증을 조절하며 즐기고 싶은 것을 끝까지 즐기다가 갔다. 애연가였던 제니는 끝까지 담배를 즐기면서, 정원을 가꾸고 예쁜 화분에 다양한 종류의 식물을 심고 가꾸면서, 눈이 안 보일 때까지 독서에 빠져서 또 사랑하는 고양이를 케어하면서 본인이 가장 좋아했던 집을 맘껏 즐기다가 세상을 떠났지 암과의 싸움에서 패배의 쓴맛을 느끼며 떠난 것이 아니었다. 당초에 싸움이란 것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꼭 낫길 바라, 기적이 올 거야!



제니에게 넌 꼭 나을 거야, 낫길 바라, 기적이 올 거야 등등의 문제 또는 메시지가 자주 왔었다. 제니는 그럴 때마다 코웃음을 쳤다.

“이런 말.. 사람들이 가볍게 하는 말 있잖아. 나을 거야, 기적이 올 거야 그런 거… 정말 무례하다고 생각해. 아니 좀 생각이 없다고 생각도 들고, 정말 성의 없다는 생각마저 들어. 내가 종교가 없지만, 아무것도 믿지 않지만, 차라리 기도할게라는 말이 듣기가 나아. 내가 이런 말을 하게 될 줄은 몰랐네… 난 정말 신을 믿지 않는데 차라리 그 말이 더 나아.”

제니의 이 말을 듣고 어느 날 암환자 유튜브를 보는데 암환자 본인이 쓴 말인 듯한 글이 눈에 들어왔다. 바로 나을 거란 말을 하지 말아 달라는 부탁이었다. 안 나을 것을 알고 치료를 받으며 삶을 연장하면서 감사하게 살면서 (안 나을 것이 확실한데) 나을 거라고 줄줄이 써져 있는 댓글이 맘에 많이 걸렸던 모양이었다. 누군가는 좋은 맘으로 하는 말에 날 선 반응이라고 하겠지만 제니를 보면서 그 맘이 이해가 되었다.

못 걸을 게 뻔한 루게릭 환자의 영상에 곧 걸을 거라고 지나가는 이들이 여기저기 댓글을 단다면, 항암치료를 거부하고 완화의료 통증치료를 택한 환자에게 나을 거라며 대충 한 줄씩 남기는 문자와 메시지가 매일 온다면 정작 본인은 어떤 맘이 들까?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보면 차마 가볍게 지나가듯 하는, 본인은 위로와 희망의 말이라고 했던 것들이 얼마나 날카롭게 또는 쑤시게, 구슬프게 들린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무엇이라도 말을 하고 싶다면, 대충 말하듯 나을 거라고, 기적이 올 거라고 허무맹랑한 소원을 뿌리며 도망가는 것보다 진실된 맘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기도하고 있다고, 맘이 아프다고 하는 것이 차라리 낫지 않을까 싶다.



글을 마치며



제니 한 사람으로 모든 말기암환자나 불치병 환자의 입장을 대변할 수는 없다. 그러나 스치듯 했던 말들이, 또는 위로나 희망을 전하기 위해 했던 말들이 환자들에게 어떻게 다가올지 말하기 전에 한 번쯤 생각해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내가 이런 상황에 처해있다면 그런 말들이 과연 위로가 되고 희망이 될 것인가 아니면 오히려 짜증을 불러일으키거나 차라리 안 읽었으면 하는 메시지가 될 것인가를 잘 생각해 보고 말하고, 문자를 보내고, 댓글을 남기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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