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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암4기 뼈전이 말기암 환자 보호자의 병상일지

폐암 뼈전이 말기암 환자의 임종 이야기

by johnprine 2023. 8.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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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1월 폐암 4기 뼈전이 진단을 받았던 제니는 이듬해 5월 14일 임종했다. 고인의 결정에 따라 어떤 치료도 하지 않았다. 항암도, 면역치료도, 방사선 치료도 하지 않았다. 완화의료팀과 함께 통증 조절을 하면서 독립적인 생활을 하면서, 집에서 숨을 거두고자 하는 의지를 꺾지 않으면서 그렇게 6개월을 보냈다. 향년 53세. 고양이를 무척이나 사랑했고, 커피를 마시며, 담배를 피우며, 뒤뜰에 나가 독서를 하는 것이 취미였던 제니가 사랑하던 고양이와 함께 떠났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제니의 임종 당일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임종 9시간 전

2022년 5월 14일 투약일지


2022년 5월 14시 새벽 1시, 끙끙대는 소리에 미다졸램을 투약했다. 잠깐 패드를 살펴보니 패드가 젖어있어 갈아주는데 소변만이 아니라 자궁에서 나온듯한 회검색의 콧물제형 물질이 다량 묻어있었다. 혼자 제니의 패드를 갈아야 해서 제니를 한쪽으로 미는 순간 제니가 눈을 뜨며 베드 난간을 잡고 나를 쳐다봤다.


“괜찮아 괜찮아… 패드 가는 거야.”


제니의 큰오빠가 멜버른에서 며칠 전에 와서 함께 짐정리를 틈틈이 하고 있는 중이었다. 페이스북에 물건을 올려 팔 수 있는 것은 팔고, 기부할 수 있는 것은 기부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어머니를 30여 년 전에 유방암으로 보냈던 그는 제니를 보면서 어머니의 임종 즈음 모습과 상당히 비슷하다고 했다.



“어제보다 더 턱이 푹 들어갔다. 그지?”


그래 보였다. 턱도 점점 내려오는 것 같았다. 한쪽으로 기웃 듯이 한쪽 얼굴이 더 쳐졌다.


“호흡하다 멈춰있는 시간도 길다…”


그러고 보니 흡~ 하고 마시는 듯한 숨을 쉬다 멈춰서 몇 초를 지속하다 숨을 쉬곤 했다.


임종 2시간 전



보통 임종 전에 가래 끓는 소리가 난다. 실제적으로 환자가 이것으로 받는 고통은 없다고 한다. 오히려 그것을 지켜보는 가족과 주변인들이 환자가 고통스러울 것이라고 예상해서, 또는 들어보지 못하던 소리에 놀라서 힘들어하곤 한다. 가래 끓는 소리를 방지하는 약으로 Glycopyrronium buscopan을 투약하는데, 보통 가래가 끓기 전에 투약을 해야 효과가 있고, 일단 가래가 끓고 나면 그다지 효과가 없다고 한다. 문제는 언제 가래가 끓을지 예측하기는 힘들다는 것이다.

제니의 오빠는 8시 즈음 가래가 끓기 시작한다며 걱정의 눈빛을 보였다. 어쩌면 그를 위해서 난 모르핀 30밀리그램과 glycopyrronium 400 mcg를 투약했다. 약을 투약하면서 보니 대변을 본 것이 느껴져 패드를 갈아주고 머리를 빗겨줬다.

가래 끓는 것을 걱정하는 오빠를 위해 glycopyrronium을 더 주려고 보니 약이 없다. 잠깐 오빠와 이야기하다가 10시가 되기 전 약국으로 향했다. 임종 전에 환자를 돌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족들의 불안함과 근심을 덜어주는 것도 중요하기에 약을 투약해서 환자가, 그의 동생의 괴로움을 덜어주고 있다는 이미지라도 주고 싶었다.

약국에 도착하니 이게 웬걸… 처방전을 집에 놓고 왔다. 처방전 없이는 구입할 수 없는 약이기도 했고, 약국에서는 이 약을 현재 갖고 있지 않으니 다른 약국으로 가보라고 했다. 즉, 처방전을 갖고 이 약국 저 약국 돌아다녀야 하는 상황이었다.


마지막으로 빌린 병원침대


제니의 임종


집에 와서 보니 제니의 오빠는 손님에게 제니의 물건을 팔고 난 후 뒤뜰에 나가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처방전을 쥐고 약국으로 다시 출발하기 전 제니의 상태가 얼마나 나쁜가 보려고 거실 문을 열었다.

제니 얼굴이 조금 더 노래 보인다. 눈과 입은 더 쳐져 보인다. 그러고 보니 숨을 쉬지 않는 것 같다. 아니 숨을 쉬지 않는다. 제니의 목과 팔에 맥박을 확인한다. 맥박이 잡히지 않는다. 청진기를 가져와서 제니의 왼쪽 가슴에 대본다. 심장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제니의 뺨에 살짝 키스를 하고 오빠를 부른다.


“잠깐… 들어와서 제니 좀 볼래요?”


오빠는 사뭇 진지한 내 표정을 보고 알아차린 것 같다. 제니를 보더니 얼굴을 감싸 안고 눈물을 흘린다. 두 사람만의 시간을 주기 위해 자리를 피해 준다.


나도 제니의 오빠도 임종 순간은 함께하지 못했다. 제니의 오빠는 내가 약국에 간 사이 물건을 사러 온 손님을 맞이하는데 제니의 가래 끓는 소리가 너무 커서 거실 문을 잠시 닫았다고 한다. 손님은 물건을 사고 10분 만에 떠났고, 그 순간 내가 집에 돌아오면서 떠나가는 손님을 봤으니 그 10분 사이에 제니가 임종을 맞이했으리라 추측했다.


찰리의 털과 수염으로 만든 털공


임종 그 후


완화의료 방문 간호사에게 전화해서 제니의 임종을 알렸다. 임종 그 자체는 응급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그들이 당장 달려올 필요는 없었다.

의료사고가 아니고 예측된 죽음이기에 제니를 조금이라도 더 편하게 해 주기 위해 피하지방 주사부터 제거했다. 제니의 머리를 다시 빗겨주고 얼굴을 씻어준 후 벌어진 입이 닫히도록 턱 밑에 작은 수건을 말아 넣어줬다.

제니의 오빠와 함께 제니가 입고 갈 옷도 골랐다. 제니가 샀던 예쁜 드레스는 부종으로, 스테로이드로 퉁퉁 부은 몸에 맞지 않아 입어보지 못했는데, 이제 입고 싶어 했던 예쁜 드레스를 입고 떠날 수 있겠다 싶었다.

제니가 죽으면 데려가고 싶어 했던 고양이 찰리와 타이슨의 재도 제니의 머리맡에 두었다. 3년 동안 털을 빗겨줄 때마다 모아놨던 찰리의 털공으로 만든 찰리모양 고양이도 제니 곁에 두었다.

완화의료팀 방문 간호사가 다녀간 이후에 장례식장에도 연락을 했다. 두 병이 장갑을 끼고 들어와 제니를 검은 가방에 집어넣었다. 제니와 함께 갈 고양이들도, 털공도, 드레스도 가져갔다.

그렇게 제니가 갔다. 사랑하는 고양이들과 함께 지금쯤 담배를 피우면서, 커피를 마시면서, 스릴러 책을 열심히 읽고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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